중앙아시아/우즈베키스탄

중앙아시아 하루만에 올드타운 클리어!!

cjswotl 2023. 8. 30. 18:20

#중앙아시아 하루만에 올드타운 클리어!!
스포: 글이 굉장히 깁니다. 시간을 갖고 천천히 음미 하세요.
일요일 아침이라 사람들과 부딪힐 것 같아 나가기가 망설여진다. 그러나 나는 여행자다. 숙제하듯 올드타운을 휙 둘러보기로 한다. 결론은 하루에 가능하다. 그래서 나 스스로도 깜짝 놀랐다.
사원이란 의미의 부하라는 동화의 나라라는 별칭도 있다. 300여개의 모스크와 167개의 마드라사가 있어 메카에서 성지순례를 못할거면 여기서 하라는 말이 전해진다.
큰 길이 아니라 골목길을 가본다. 지도 보며 가니 의외로 다닐만하다. 드물게 핑크빛 건물이 사랑스럽다.
오래된 골목을 지나서 지단으로 왔어요.
올드타운은 부하라타워와 레기스탄, 지단(성채)가 있는 지역 일대다. 내 지도에 찍힌 🌟들을 따라 돌겁니다.
처음 간 곳이 무시무시한 감옥이다. 리뷰가 자세히 나와서 입장은 안하기로... 
영국대사도 왕 알현하러 올때 말타고 멋모르고 와서 불경죄로 갇혔다는 곳이고 영국인 장교 둘이 벌레 방에서 2년간 끔찍한 고문을 받고 참형 당했다는 역사가 있어 서양애들의 분노를 산 곳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인간이 참 잔인하다.
최근 읽은 파친코의 선자 남편 이삭이 신사참배를 거부해서 감옥에 갇혀 있다 죽을 때 쯤 집으로 돌아온 장면이 나온다. 덤덤하게 서술하지만 너무도 끔찍한 몰골이더라. 종교가 대체 뭐길래.

아르크성을 간다. 내국인과 러시아인은 2만숨이고 외국인은 4만숨 입장료가 있다. 대체로 2배 차이다. 여긴 볼만하나 다른 곳은 가성비가 떨어져 입장하지 않았다. 이미 히바에서 질이 떨어짐을 확연히 느꼈거든요.
아르크성은 7세기 훗자 하우톤 여왕이 아랍인과 싸운 곳이고 1920년 러시아에 의해 멸망할 때까지 살았던 성이다.
옆에 철재로 만든 부하라 타워가 보인다. 올라가면 별것 없다는데 엘리베이터 타고 올라가서 그런지 입장료 4만숨. 급 관심이 떨어진다.
보시다시피 군인들도 단체로 여행오고 교사가 이끄는 학생들도 떼지어 다니며 가족, 친구, 연인들이 일요일에 다 같이 나와 북적거린다. 덕분에 자전거와 킥보드 대여와 전기차 이용이 상당하더군요.
원래 허물어 가던 성을 복원한 거다. 올라가면 동전, 아랍어책, 전통의상, 생태와 지리 관련 박물관이 있어 천천히 훝어 보면 된다. 그리고 빠질 수 없는 것이 뭐다. 관광상품 파는 삽들이다.
인파에 떠밀려 가본다.

입구의 주마모스크로 들어가면 박물관이다. 페르시아 글자는 예쁘긴 해요. 마치 하나의 그림 같아요. 난 저 글씨 읽고 쓰라면 학교 안다닐듯...
아래 손가락 두 마디 크기의 책은 포켓용 코란 경전이다. 넘 귀염귀염하다.
역시 천장 돔은 ㄱㅏ장 화려하다.
손으로 쓴 편지
삽에서 본 캘리그라피다. 이게 대세가 보다.
꼬맹이는 구석에 숨어 핸드폰 삼매경
성벽에서 보는 부하라 마을을 본다. 높은 건물이 없다.
아르크에서 가장 오래된 접견실과 대관식장이다.
기둥을 하도 많이 봐서 감흥이 떨어진다. 설명을 보니 대사관으로 썼나보다. 일하는 사람도 제법 있었고 심지어 전화교환수도 2명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지금은 텅 비어 있다.
왕이 된듯 칼 들고 왕좌에 앉아 있고 서양 할매가 즉흥 상황극을 펼친다. 마치 왕의 하혜를 바라는 신하처럼... 이 둘 할매 땜에 피식거린다. 결국 칼을 두 손 모아 받았네요. 할매들 파이팅!!
부하라 타워를 스쳐 지나 볼로 하우즈 모스크에 간다. 천상의 연못은 이름만 그럴싸하다. 반영이 없는 시간이라 그런듯.. 좀 특이한 모습이다. 나무 기둥도 있고 색감도 특이하고. 예배시간이 아니라 닫혀 있다.
1718년 칸의 전용 모스크로 지어져 예배하러 갈 때 아르크 성에서 모스크까자 카펫을 깔아 걸어갔다 한다. 왕의 권능이 대단했네요.
난 사과와 치즈 넣은 빵을 먹으며 오랫동안 쳐다보며 내 다리에 잠시 안식을 선사한다. 

공원 길을 따라 이스마일 사마일 영묘에 간다.
892년~943년에 지어진 오래된 이슬람 건축물로 태양의 위치에 따라 흙벽돌의 무늬가 오묘한 변화를 일으키며 신비감을 준다네요. 구운 벽돌에 상감을 입혀서 그렇다고 해요. 아~~ 낙타 젖으로 반죽해 만든 진흙 벽돌은 수천년을 견딘다고 하나 내 눈엔 찍어낸지 얼마 안된 새 벽돌로 보인다.
네. 저 무식해요. 쩝
암튼 이스마일 사마니가 부친을 위해 지은 영묘이나 후에 자손도 묻혀 사만 왕조의 묘가 된다. 그리고 일화로 숨을 참고 2바퀴 돌면 소원성취 한다고 한다. 그러나 이 땡볕에 도는 이는 한 명도 없다.
이런 거 안해도 소원 들어주려면 진작 들어줬을거다.
글고 보면 나 정말 냉정한 여행자였네. ㅎㅎ 

이 옆은 놀이기구 타는 곳이다. 관람차는 천천히 돌고 해바라기는 뺑글뺑글 휙 돈다. 떼거지로 체험 온 학생들의 비명 소리가 들리지 않나요? 그 옆에 어른들은 샥슬리 먹으며 쳐다보며 흐뭇해 한다.
좀 더 올라가면 Talipach Gate가 보인다. 다리 아파 더 안 가고 시장 구경간다. 오~~ 지금은 체리철이다. 신난다.
트럭 안에서 마늘을 팔고 있는 모습이 디자인적으로 예뻐 보여 한 컷!! 몰래 찍는게 들켰다. 튀자.
히바에 셈의 우물이 있다면 부하라엔 욥의 샘이 있다. 바로 챠슈마 아유브.
욥이 지나다 물이 없어 허덕이는 사람을 보고 지팡이로 내려쳐 샘물이 나왔다는 전설이 있다. 이 물은 눈병이 낫고 몸에 좋다고 하며 육신 치료뿐 아니라 영혼 재생이나 정화에 도움 준다 한다. 믿거나 말거나~~~ 
부하라의 랜드마크인 칼란 미나렛으로 고고!!
카라칸 왕조 아루스 칸이 1127년에 햇빛에 구운 갈색 벽돌을 달걀 흰자와 낙타젖으로 반죽하여 쌓았다고 한다. 낙타와 닭들이 열일 했네. 와~~ 상상이 안되는 양이겠다.
18세기 공개 처형장으로 정상에서 자루에 넣은 사형수를 던져 죽음의 탑이라 칭했으며 1884년 마지막 처형이 있었다 한다.여담으로 한 번은자루가 터져 여자의 차도르가 낙화산 역할을 해서 살았다는 일화도 있다. 이 여자는 정말 운이 좋은 케이스다. 그러나 가끔 이슬람은 형벌이 참 잔인하다 느껴질 때가 많아요. 문화 차이겠죠.
사막의 등대처럼 길잡이 역할도 했다고 해요.
참~~다른 유명한 일화가 있어요.
칭기즈칸이 탑을 보기 위해 올려다 보는 순간 모자가 떨어져 머리를 숙이고 줍는다. 이 탑이 나의 머리를 숙이게 한 멋진 탑이라며 파괴하지 말라고 했다네요.
왼쪽은 Mir- Arab 마드라사로 이슬람 교육기관이다. 7년 교육제로 티무르 시대 페르시아 노예 3천명을 팔아 지었다고 해요. 노예의 눈물과 피와 슬픔으로 지어졌다니 가슴이 아프네요.
내부는 아르메니아 교회에서 본 듯한 디자인이네요. 문화는 돌고 도나보다.
저녁에 공연이 있다고 하니 야경 보러 가서 볼랍니다.
오른쪽에 있는칼란 모스크다. 입장료 5천숨이 있으나 뒷쪽 화장실로 오면 안내도 될 듯...
16세기 칭기스칸에 의해 살해 당한 이맘과 신자를 기리는 팔각 사당이 있고 만명을 수용할 수 있는 규모다.
그러나 들어가 봐도 역시 별 거 없다. 그리고 공사중이다.
아주머니 무리를 따라가니 예배를 드리신다. 뭔가 경건해 보이나 안이 좀 초라하다. 남자와 여자의 차별이 모스크에서도 심하다.
울루베그 마드라사는 다른 것에 비해 핑크핑크하다. 이 아래서 음악회 열면 좋을 듯...
여기도 입장료 있지만 허접하단다. 난 당연히 패스. 그냥 리뷰 사진 보는 걸로 만족하며 안들어가길 잘 했다고 칭찬한다.
이 길 양끝에 세 개의 돔이 있는 시장이다. 모든 관광지화된 상품들을 팔뿐이다. 그냥 눈요기로 보시라.
위의 바닥에 깔린 카펫이 실크라며 700$ 부른다. 저 쪼꼬미가 그리 비싸다니 할인을 시도한다 해도 너무 비싸다. 역시 실크로드 상인들의 집결지 후예들 답게 상술이 대단해요. 만일 사고 싶다면 흥정을 잘 해야 할듯. 어느 분은 20%에서 부터 흥정해 가라더라.
와우~~ 머리 아프다. 눈치 싸움!!
그냥 저렴한 우리나라 면카펫 쓸란다. 흥!!!
귀염귀염한 멜론 할배들이다. 자석으로 나와 한 개 정도 겟해도 좋다.
수제 인형 공장 겸 샵은 인파가 너무 많아 패스. 다음에 와 봐야겠다.
유대교 교회라고 해서 들어갔다. 1991년 이스라엘로 떠나고 소수만 남았다. 이슬람은 타종교를 박해하고 강요한다고 알지만 역사적으로 세금만 잘 낸다면 종교의 자유를 허용했었다.
입구는 삽이나 호텔 입구다. 안엔 식당도 있다. 유적지가 아니라 상술에 범벅이 된듯하다.
이건 태국 롤 아이스크림이다. 너무 늦게 만들어서 그냥 다른 터키 아이스크림을 먹으러 돌아섰다능.
라비하우스로 나왔다. 연못 주변이란 의미로 과거 구소련 초기만 해도 100여개의 연못이 있었으나 전염병 확산으로 1920~30년대 대부분 메워졌다.
530년 된 뽕나무는 이미 사망하셨다. 그 위에 저 모형 새의 집이 되어 있다.
여기 '현명한 바보' 라 칭하는 호자 나스루딘 동상은 인기짱이다. 오늘도 열일 하고 있다.
당나귀에 앉아 한 손을 들고 우스운 표정을 짓는 이 분은 바른 말을 하고 유머와 재치로 세상을 비판 했으며 자신의 소신을 굽히지 않은 인물이다. 또한 유머가 풍부한 수업으로 학생들이 공부하게 한 교육자며 수 많은 이야기가 회자되고 있다. 가령 실존 인물인가? 투르크인가? 페르시아인인가? 우즈벡 민족이었다? 당나귀를 거꾸로 타고 다녔다. 아니다. 등등
그런데 조지아 시그나기에서 본 피로스마니의 동명작품인 당나귀 탄 의사와 왠지 겹쳐  보인다.
그런만큼 여러 나라에 걸쳐 위인으로 알려져 있고 그의 이야기가 여러 언어로 번역되어 책으로 발간되어 있다.
그에 관한 일화는 아래 따로 있으니 읽어 보길 바래요.
나지르 지반베기 마드라사는 1622년 나지르 지반베기에 의해 건설된 신학교다. 두 마리 황새가 태양을 향해 날아가고 태양 속에 그의 얼굴이 있다. 우상 숭배하지 말라는 교리에 어긋난 건물이라 유명하고 태양 속 인물의 끝이 좋지 못했다. 
지반배기는 고위직으로 엄청난 부자였다. 그러나 혼례 때 호화로운 예물을 주지 못했다. 수년이 지나 이 마드라사를 지어 부인에게 바치며 "결혼할 때 좋은 선물을 못해주어 지금 이렇게아름다운 건축물을 완공할 수 있었소. 늦었지만 이걸 결혼 선물로 받아주시오." 라고 했다. 
와~~ 나도 대저택 받고 싶다. 그런데 돈 없으면 결혼이 힘들겠다. 지금도 그렇지만 저 땐 더 심했을듯...

이슬람 건축물엔 그래서 그림이 없고 캘리그라피로 기하학적인 무늬의 타일 장식이 있을뿐이다.
암튼 여기에 옛 순례자들이 묵었던 숙소 하나카가 있고 북쪽  쿠켈다쉬 마드라사가 있어 중앙아시아 각지의 신학생이 모여들어 수학했다고 한다. 
그리고 맞은편에 마고키 아타리 모스크가 있다. 약초꾼의 동굴이란 의미다. 처음엔 불교 사원(불교기단), 5세기엔 조로아스터교 사원 (무늬벽돌층), 12세기엔 모스크(이슬람 건축 양식)로 세워져서 유태 회당으로 사용되다가 1860년 지진으로 묻혔었다고 해요.

캘리그라피로 그린 그림이 흥미롭네요.
지금까지 긴 글 읽느라 수고하셨습니다. 그만큼 글 쓰느라 난 더 시간과 정성을 들였습니다. 그러면서 부하라 올드타운에 대한 공부를 완벽히 했어요.
오늘도 열공한 영순이를 칭찬합니다. 
추신 : 블로그 baborose 님의 나스렛단에 관한 글이다. 읽어 보면 어떤 사람인지 감이 옴.
세상의 부조리에 분노할 줄 모르면 젊은이답지 않다. 
반대로, 제 맘에 안 든다고 번번히 화를 내면 지혜롭게 늙기 어렵다. 
삶의 비극적 의미를 잘 아는 사람이 가장 즐거운 사람이라는 말이 있다. 

나스레딘 호자의 언행은 늘 상식과 어긋났는데,
비극으로 흐르는 대신 끝없는 유머의 원천이 됐다. 
유머가 세상을 구원할 수는 없겠지만, 
유머 없이 이 세상을 살아가려면 무척 힘겨울 것이다.

나스레딘은 13세기 터키의 악세히르에 살았다. 
그의 일화는 입에서 입으로 전해졌고, 
후세 사람들이 새로운 이야기를 지어내며 그를 주인공으로 끌어들이기도 했다. 
그의 이야기는 다양한 ‘유머 모음’ 형태로 전해진다.

나스레딘은 강연하길 몹시 싫어했다. 
이웃마을의 끈질긴 요청에 마지못해  연단 앞에 선 그가 사람들에게 물었다.
“지금부터 제가 무슨 얘기 하려는지 아시는 분, 손들어 보세요.” 
첫날은 한명도 손을 들지 않았는데, 
그는 “아무도 들을 준비가 안 돼 있으니 강연을 할 수 없습니다” 하며 나가 버렸다, 

둘째날도 같은 질문을 던졌는데, 이번엔 모두 손을 들었다. 
나스레딘은 “다 아시는데 굳이 강연을 할 필요가 없지요” 말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셋째날, 같은 질문에 왼쪽 사람들은 손을 들었고 
오른쪽 사람들은 손을 들지 않았다. 
나스레딘은 결국 강연을 하지 않았다. 
“아는 분들이 모르는 분들한테 가르쳐 주시면 되겠네요.”

그는 왜 이토록 강연하기를 싫어했을까? 
삶의 지혜라는 건 강연 같은 걸로 전달할 수 없다고 생각했을 수 있다. 
일방적인 지식 전달이란 게 허망한 일이며, 
사람의 생각을 바꾸는 게 불가능에 가깝다는 걸 잘 알았기 때문일 수도 있다.

그는 당나귀를 거꾸로 돌아앉아 타고 다닌 사람으로 유명하다. 
사람들이 이유를 물으면 “나는 똑바로 있는데 
이 당나귀가 거꾸로 가는 거지” 능청스레 대답했다고 한다. 
바보스러울 정도로 솔직한 그의 태도는 그 자체로 세상에 대한 풍자가 된다.

나스레딘은 찢어지게 가난했다. 
그가 빵집에 들어가서 찐빵 하나를 먹었는데 꿀맛이었다. 
하나 더 시켜서 맛있게 먹었다. 
친절하던 빵집 주인은 그가 돈이 없다는 걸 확인하고 얼굴색이 변했다. 

주인은 “당장 꺼지라”며 나스레딘의 뺨을 세차게 후려갈겼다. 
아픈 뺨을 움켜쥐고 빵집 문을 나서던 그가 문득 뭔가 생각난 듯 
발걸음을 돌려 주인에게 다가셨다. 
“내일도 이 값에 빵을 먹어도 될까요?”

배고픈 건 슬픈 일이다. 
얼핏 보면 싱거운 우스개 같지만, 
차분히 곱씹어 보면 깊은 슬픔이 묻어난다. 

얼마나 배가 고팠길래 “일단 먹고 보자” 생각했을까? 
눈에 불이 날 정도로 뺨을 맞은 심정은 어땠을까? 
또 굶을 생각을 하니 얼마나 참담했기에 
내일도 빵 먹는 대가로 뺨을 때려달라고 했을까? 
감정이입을 하고 다시 읽으면, 눈물이 날 정도로 웃긴다.

가난한 동네에 도둑 얘기가 빠질 수 없다. 
어느날 밤, 도둑이 들어와서 자루에 식기와 냄비를 모두 넣고 달아났다. 
나스레딘은 누더기 이불을 뒤집어 쓴 채 엉금엉금 도둑 뒤를 따라갔다. 

한참 걸어가던 도둑이 짜증을 내며 뒤를 돌아보았다. 
“아니, 왜 자꾸 따라오는 거요?” 
나스레딘이 대답했다. 
“지금 이사 가는 거 아닌가요?”

훔쳐갈 것도 없는 나스레딘의 집을 터는 도둑은 또 얼마나 비참했을까? 
엉금엉금 도둑 뒤를 따라가는 나스레딘의 모습은 
정복자 티무르의 수탈에 허덕이던 당시 서민들의 눈물겨운 풍경화다.

나스레딘은 부자들이란 뼛속까지 탐욕스럽다고 생각한 모양이다. 
유명한 부자 한명이 웅덩이에 빠져 죽을 위험에 처했다. 

사람들이 그를 구해 주려고 소리쳤다. 
“손을 주세요, 손을….” 

부자는 손을 내밀지 않은 채 점점 더 깊이 물에 빠져들었다. 
나스레딘이 부자를 향해 상체를 내밀며 말했다. 
“손을 받으시오.” 
부자는 그제서야 나스레딘의 손을 붙잡아 목숨을 건졌다.

그는 이슬람 문화권에 속했지만, 
알라가 세상에 정의와 평화를 가져다 줄 거라고 생각한 것 같지는 않다. 

동네 아이들 4명이 호두를 100개 정도 주웠는데, 
서로 많이 가지려고 싸움이 났다. 
아이들은 나스레딘에게 달려와서 문제를 해결해 달라고 부탁했다. 

나스레딘이 물었다. 
“어떻게 나눠줄까? 
신의 방식으로 나눠줄까? 아니면 내 방식으로 나눠줄까?”

 아이들은 신의 방식으로 나눠달라고 입을 모았다. 
나스레딘은 호두를 아무렇게나 집어서 
첫째 아이에게 50개, 둘째 아이에게 10개, 
셋째 아이에게 25개, 넷째 아이에게 15개를 주었다. 

아이들이 어리둥절해서 물었다. 
“선생님, 이건 공정하지 않아요!” 

나스레딘이 대답했다. 
“신은 이렇게 나눠주신단다.
 내 방식으로 했다면 공정하게 나눠줬겠지만….
 저 도시를 한번 봐라, 신이 사람들에게 어떻게 재물을 나눠주시는지.”

폭군 티무르는 나스레딘의 지혜에 
홀딱 반해서 자기 자문역으로 삼았다고 한다. 

그는 티무르에게 직언을 서슴지 않았다. 
티무르는 도시에 들끓는 거지를 소탕하기 위해 
거지 명단을 작성하라고 명령했다. 
나스레딘은 맨 위에 큰 글씨로 “티무르”라고 썼다. 

이유를 묻자 나스레딘이 대답했다. 
“남의 것 내놓으라 하는 건 똑같지 않습니까? 
다른 거지들은 따라다니며 애원하는 반면, 
티무르는 안 주면 죽인다고 위협하는 게 다를 뿐이지요.”

나스레딘은 슬픔을 잘 알기에 누구보다 유머도 잘 알았다. 
그는 가난하지만 넉넉하며, 바보 같지만 속이 꽉 차 있으며, 
잘난 체 하는 법이 없지만 지혜롭다. 
그는 소박한 유머로 힘없는 사람의 마음을 어루만진다. 
그는 부처나 예수처럼 종교 지도자가 되는 대신 
평범한 사람의 지혜, 그 극한을 보여주었다.

상식이 무너지고 배운 자들의 궤변이 판치는 요즘, 
유머가 가장 높은 차원의 지혜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사람은 나이 들수록 귀가 어두워지고 완고해지기 쉽다. 
말 많고 탈 많은 세상, 지혜롭게 늙고 싶다면 다음 일화를 기억해 둠직 하다.

어느날 사람들이 나스레딘에게 물었다. 
“선생님은 어떻게 그렇게 현명한 사람이 되셨어요?” 

나스레딘이 대답했다. 
“아주 간단하지요. 현명한 사람이 말할 때 나는 주의 깊게 듣지요. 
그리고 다른 사람이 내 얘기를 들을 때 나도 내 얘기를 주의 깊게 듣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