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후
옷소매 붉은 끝동(강미강)
달달한 로맨스 소설로 머리 좀 식히고 세월도 낚아보려고 빌려 읽은 책이 “옷소매 붉은 끝동”입니다. 그런데 다 읽고도 선뜻 손에서 놓을 수 없더군요.
내 생전 로맨스 소설 읽으며 펑펑 울어보기도 처음입니다. 너무 먹먹하고 슬퍼서 재탕은 못할것 같아요.
제목은 궁녀가 입는 의복의 소매 끝이 붉은색 이라 붙여진듯 합니다.
주인공 덕임이가 어릴적에 부모를 여의고 형제들의 뒷바라지와 언문소설의 궁체를 잘 배워보려 궁의 생각시로 들어 갑니다. 언문소설을 또래에게 읽어주며 사례를 챙기는 귀여운 악동같은 모습도 보이고 소소한 장난을 치며 궁생활을 시작하는 모습에선 얼마나 웃기던지 나도 모르게 웃게 되더군요.
그러다 늙은 왕을 만나 죽은 후궁의 이야기를 듣게 됩니다. 사랑이라는 미명 아래 왕이 시키는대로 아들을 죽이라 상소 올리게 한 의열궁 이야기도 접합니다.
여기까지 읽을 때만해도 이렇게 슬플지 몰랐답니다. 로맨스 소설이란게 부모세대의 슬픔을 딪고 역경을 이겨내어 결말엔 행복하게 오래오래 살았더랍니다.로 끝나는게 그 수순이니깐요.
읽다보니 정조 이야기에 가깝다고 생각하면서도 별뜻 없이 해피엔딩을 의심하지 않았어요. 초반에 여주가 험난하게 다루어져야 해피엔딩이 빛이 나니깐요.
그런데 정말 초반에 나온 늙은 왕은 영조고 죽은 후궁은 궁녀로 들어와 후궁이된 의열궁인 영빈이씨 였어요. 정조의 할머니이지요.
덕임은 정조가 사랑한 궁녀로 의빈성씨입니다. 눈치 챘다시피 역사고서를 바탕으로 한 픽션 즉 소설입니다.
아무리 역사를 각색해 쓴 글이라도 달달할줄 알았지요. 그런데 아니더라고요. 성군은 한 아녀자에게 지독한 남편이더군요. 거의 의롭고 청빈하게 살라며 매몰차게 몰아부치더군요. 본인만 고고한 성군이면 되지 왜 옆에 가까이 있다고 해서 똑같이 요구하는지... 이것도 안된다. 저것도 하지 마라.
특히 요 대목에서 절절하더군요.
어린 세자가 죽고 아이를 낳다 죽기 직전입니다. 정조를 부르지 않고 친구인 나인 경희와 복연이 부르라는 덕임의 말이 이상해 궁인이 정조에게 갑니다. 그리곤 정조가 오지요. 그리고 이런 대사가 오갑니다.
어찌 여기 계시옵니까?
내가 경희와 복연이랑 데려오라고 하지 않았느냐? 어찌 전하를 모셔 왔어!
그 애들을 꼭 보고 가야 하는데....
나는 보고싶지 않으냐?
전하는 걱정이 되지 않으니까요. 신첩이 없어도 잘 사실텐데요. 그 애들이 걱정되지.
임금이신게 좋다고 하셨으니 그저 좋은 임금으로 사소서. 신첩은 평범한 계집으로 살겠나이다. 진심으로 신첩을 아끼신다면 다음 생에서는 알아보시더라도 아무쪼록 옷깃만 스치고 지나가소서.
덕임은 누구에게 좌지우지 되지 않고 본인으로 살고 싶어했답니다. 그런데 자신의 의지와 상관 없이 정조에게 맞춰가며 자신을 잃어갑니다. 그렇게 승은을 입지 않기 위해 도망쳤지만 시대가 시대인지라 그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했지요.
한참 울다가 그 시대에 태어나지 않고 지금 태어난게 내 복이라 생각하며 울음을 그칩니다. 지금 난 내가 원한다면 뭐든 배우거나 뭘 할지 선택할 수 있으니깐. 너무 게을러서 하기 싫을뿐이지만서도.ㅋㅋ
이 글을 쓰고 있자니 어느새 눈물이 말라버렸어요. 민망합니다. 칠년동안 이 책을 쓴 작가의 글발을 당해 낼 수 없어요. 내 독후는 너무 건조합니다. 그러니 혹 이 책을 접할 기회가 있으면 꼭 읽어 보라고 권하고 싶어요. 나쁜 놈이라 욕하면서 읽어 보세요.
1박2일이면 다 읽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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